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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6-05 13:14
탈북여성들, 성폭행으로 인한 낙태시술 【m.miso123.top】 정품미프진구별방법 유산약후유증
 글쓴이 :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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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한족 남성에게 인신매매 되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탈북여성

 

 

 

탈북민 단체인 ‘대량학살을 멈추기 위한 세계연대’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는데요, 이 단체 회원인 가명의 김보빈 씨는 자신과 같이 탈북과 북송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여성 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증언 한다고 밝혔습니다.

관련정보

*낙태죄, 여성에게만 희생 강요?

* 미국 미페프렉스 미프진코리아

* 미프진 사기 심각하다 

* 여성들의 외침 "낙태법 개편하라"

김: 제 12교화소 함경북도 전거리 교화소에 가니까 홀딱 벗겨놓고 자궁속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를 하는겁니다.

여성시대, 지난 시간에 이어 김보빈 씨의 두번째 증언입니다.

음악:

북한에서 어렵게 살다 장사를 하기 위한 돈을 벌기위해 탈북했지만 브로커, 조선족 중개인이 한족남성에게 팔아 임신을 합니다. 출산 10여일을 앞두고 중국 공안에게 발각되어 한족과는 살 수 있지만 아기는 낳을 수 없다며 강제로 낙태를 시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학대로 남편과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딸을 낳았지만 동거남편과 가족들은 아들이 필요하다며 보빈 씨를 외면하자 딸을 데리고 연변쪽으로 도망쳐 관광안내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자궁암이 발견되어 딸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으려고 중국을 탈출해 몽골 국경에서 잡혀 북송되어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기소에서 그곳 감찰과 부과장의 성폭행으로 또 다시 임신을 합니다.

김: 그 인간들의 노리개로 성폭행을 당하고 나니 40일이 지나 입덧이 시작되어 임신된 것을 알았어요 탈북자들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감찰과 부과장이 먼저 제가 화장실에서 토하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 잡혀나온지 3개월이 지났으니까 중국 사람의 애가 임신된 것으로 생각지도 못하잖아요 그런데 저를 중국에서 임신되어서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산부인과에 데려가서 마취도 없이 그냥 강제로 낙태 수술을 시키는데 너무 아팠어요

육체적 아픔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까지 겪다보니 왜 이런 고통을 나만 겪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선족 교회에 나갔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김: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고 그때는 하나님을 믿은지 얼마 안되어서 성경말씀도 제대로 몰랐고 그래서 힘든 마음에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았어요

보빈 씨는 낙태 수술을 마치고 바로 구치소로 넘겨졌다고 하는데요 교화소로 가기 위해 조사를 받는 상태라지만 사람을 이렇게 취급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김: 낙태 수술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도 피 흘리고 있었는데 생리대도 제대로 없어서 제가 입고간 내의를 뜯어서 흘리는 피를 막으면서 갔는데 구치소로 올라가는거에요 판결을 받기위해 저는 3개월동안 철장밖에 손바닥, 요만한 문턱이 있는데 그곳에 무릎을 꿇고 또 쇠갈고리로 손바닥을 맞으면서 하루 8시간 처벌을 받으며 조사를 받았던 기억이나요.

이렇게 3개월동안 조사를 받고 함경북도 전거리 교화소에 3년형기로 가게 됩니다. 그 전거리 교화소에 가자마자 또 한번 끔찍한 수모를 당하는데요,

김: 저희를 홀딱 벗기고 1회용 장갑을 끼고 우리의 건강을 검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는지 자궁속에 무엇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검사를 하는 것이 전 세계 북한 밖에 없는것 같아요. 결국은 이런 교화소로 가는 것 자체가 인권을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주민이라는 가치를 떠나서 너희는 죄를 지었으니까 짐승만도 못하니 하늘을 보고 살 수 없고 오직 땅 밖에 볼 수 없다며 교화소에서 입을 옷도 자신들이 입고간 옷으로 모두 이리저리 붙여 수선을 했다는군요

김: 머리도 기울게 잘라요 그리고 삼각 흰수건 쓰고 죄인 복은 개인이 옷을 입고 들어간 옷을 각자의 옷을 뜯어 맞추어 수선해서 입었어요 신인반 생활을 한 40일간 하고 교화반에 전방되었는데 교화반에는 감자반, 옥수수반, 남새반, 축산반, 그리고 허약반 병반 그렇게 있었어요

여자 교화반 시설옆에 사체실이 있었다는데요, 여름에는 죽은 시체에서 구더기들이 나오는데 북한에서 전해지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묘를 파서 해골에 고인물을 먹으면 만병 통치가 된다고 그러니까 사람 사체에서 나오는 벌래도 약이다 그러니까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은 살기위해 그 구더기를 막 쓸어 담아서 불에 볶아서 몽둥이로 쳐서 밥에다 비벼먹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허약이 퇴치가 되었어요

그때 당시 나온 밥은 사람이 거의 먹을 수도 없는 모래 섞인 옥수수, 거기에 두부콩 몇알 수수 껍질까지 섞인데다 양도 너무 적어 모두가 변비로 고생을 많이했다고 전합니다.

김: 씻지도 않고 쪄서 컵같이 단지로 찍어서 교화소에서는 단지밥, 단지밥이라고 불렀어요 그런 밥을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한 단지가 다 차례지지만 그날 아파서 나가지 못하면 절반을 주어요 그 밥이 수수껍질 까지도 막 섞여있다 보니까 변이 굳어서 나무 꼬쟁이로 홍문을 쑤셔서 변을 볼때도 많았고요

이러다 보니 원래 영양부족에다 위생까지 엉망이라 회충이 입으로 나와도, 죽은 사람이 옆에 있어도 놀랍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김: 배안에 회충만 많이 끼어 기침만 콜록해도 입안에서 회충이 막 나오고 사람이 죽은 시체를 옆에 놓고 밥먹는 것은 정상적인 일과로 처음에서 시체를 보고 놀랐는데 들어오는 사람보다 죽어서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중국으로 탈북해 조선족 교회에 나가게 되어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만난 것이 탈북 생활에서 만난 축복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저는 중국에서 애기를 낳고 조선족 교회를 나가1년도 안되게 잠깐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제가 체험을 하다 보니까 확실하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했어요 교화소에서 열병에 시달리면서 기도 할때 말씀을 주셨어요 네가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피할 길을 준다고 해서, 뭔가 뜻이 있다, 고통끝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명백하게 알았어요

보빈 씨는 40일 동안이나 열병에 시달리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듣고 살아난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 임을 확실이 체험했다고 하네요

김: 이제 나는 이제 죽었구나 눈뜰힘도 없는데 하나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일어나라고, 누군가 나를 찾았으니까 일어났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 쓰러져 있는거에요 그러데 철장문 밖에 담당 선생님이 뭐 먹고 싶으냐고 하는거에요 그때 제가 김칫국물에 토장국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선생님 토장국 먹고 싶다고 그런데 선생님이 그 밤에 토장국에 이밥 그리고 김치를 가지고 와서 밤 12시에 음식을 챙겨주셨어요 그 안에서도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선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출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출소를 하고 보니까 갈 곳이 없어 할수없이 광산 일을하다 다시 탈출을 계획하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직접 탈출 시켜달라는 기도를 하며 실행에 옮겼습니다.

김: 온성에 있는 큰 어머니님 집에 가서 석탄 캐는 탄광에서 60미터 수직 갱에 들어가서 석탄을 담아서 올리고 때로는 위에서 석탄을 돌려서 집어올리는 그런 일을 하면서 6개월을 지내다 다시 하나님한테 기도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나를 인도 하셔서 탈북을 하게 해 달라고 해서 2011년 4월 9일에 다시 탈북을 시도 했습니다. 별도 안보이는 새캄한 밤인에 내가 걸어가는 길만은 보였어요 너무 놀라운 기적이잖아요

이와함게 보빈씨 에게 기적같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는데요, 전에 자궁암 진단을 받았던 그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것입니다.

김: 그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기록은 있는데 치료 기록과 완치되었다는 기록이 없는거에요 의사들도 모두 놀라요 그래서 장춘과 길림에 있는 병원을 통해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들도 3자녀를 낳았지만 근종이라든가 혹이라든가 이런 것이 없이 너무 깨끗하다고….

또 다른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병을 고치기위해 중국 보육원데 맡기고 간 그 딸을 만난거죠

김: 저희 딸을 찾으러 고아원에 갔는데 10일 늦었으면 딸을 못찾았어요 한국에 입양을 오게 되었더라고요  당시 두살 전에 제가 고아원에 맡겼는데 7살에, 제가 잡혀 북송되었다가 다시 재 탈북해 들어오기 까지 5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 5년동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셔서 딸을 만나게 해 주셨는데 딸이 왜 이제야 왔어요,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이 딸을 데리고 대한민국에 정착을 했습니다.

김보빈 씨는 북한도 이제는 주민들이 자기 자신이 살아나가야 한다는 삶이 시작 되었다며 이제는 더이상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김: 우리가 더 이상 죽어서는 안된다 국가에서 주면 좋고 안주면 더 좋다, 이런 구호가 나와요 왜냐 하면 국가에서 하나주고 열을 뺏어갔는데 이제는 백성이 살아가니까 국가가 돈이 없는거에요 저희는 남북 정상회담때 김정은이 판문점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고 “어 김정은이 탈북했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일부 탈북민들이 남북, 미북 정상 회담으로 평화가 온다고 하니까 곧 북한의 부모님, 가족을 만날 것처럼 기뻐 한다는데요 북한이 체제 보장을 받는다면 처단의 대상이 누구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김: 제일 먼저 처단의 대상은 탈북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에서는 지금 우리 탈북자 32.000명을 나라의 배신자라고 하는데 그런 인간들이 우리를 용서해서 저희를 가족들과 만나게 할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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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중반 여성입니다. 초경 이후 십여년동안 규칙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피임법으로 주기법을 병용하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생리가 일주일 늦어지면서 테스트기를 해보니 1분 내에 선명한 두 줄이 나와 허탈하고 당황스럽고 어지럽더군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겪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낙태죄가 사실상 무효화된 지금, 5-6주만에 알아차리게 된 것이라 중절 수술을 하는데에 문제가 될 건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의료기록이 남는다는게 가장 마음에 걸리더군요. 환자의 동의 없이는 열람이 불가능하도록 되어있지만 어쩌다 보호자, 부모님이 알게 되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알아봐 준 ‘토닥톡’ 이라는 커뮤니티?를 이용해볼까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소파술 말고 미프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너무 아파서 소파술 할 걸 후회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픔이 가시고 태반 배출 확인 후인 지금은 그래도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아무래도 큰 강점으로 느껴져요.
첫번째 약 복용 시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습니다. 아프지도, 출혈이 있지도 않았고 그저 쉰다 생각하고 내리 잤어요. 두번째 약 복용 50분 전 진통제, 30분 전 구토억제제 복용 후, 안내 받은 대로 혀 밑에 30분 녹인 뒤 삼켰습니다. 10분 이내에 복통이 느껴졌습니다. 토를 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복용 후 30분쯤에 토기가 올라오더군요. 삼켜보려고 하였으나 토가 분수처럼 나왔습니다. 효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흡수는 잘 되었나 봅니다. 이 후 배가 많이 아파 진통제를 복용하였으나 금방 또 구토를 하게 되었고, 끙끙 앓았어요. 응급실을 가야하나 수없이 고민했고, 약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였는데, 아픔이 가신 후로는 잘 참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계신 분이 해줄 수 있는게 딱히 없다해도 곁을 지켜주는게 심적으로 안정이 되더라구요. 제발 잠들면 좋겠다 좋겠다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두세시간 뒤 아래로 나올거 같은 느낌이 들면서 깼습니다. 묵직한 덩어리가 나오더라구요. 그 후로는 딱히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자궁내벽인지 잔류태반이었는지 덩어리들이 일주일 정도는 나왔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유산 후에는 출산 후와 같이 모유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몇주 동안 눌리기만 해도 젖이 흘러서 속옷도 잠옷도 곤란할 때가 있었답니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다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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